“이 월세를 어떻게 내나”…유럽 임대료에 민심 폭발

2026-10-01 20:07

유럽 주요 도시에서 치솟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는 시민들의 불만이 거리로 번지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87세 여성이 급격하게 오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살던 집에서 쫓겨난 사건이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다. 독일 베를린에서도 높은 월세와 주택 부족 문제가 선거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는 등 주거 문제가 유럽 사회의 핵심 현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최근 마드리드에 70년 넘게 살아온 87세 마리아 델 카르멘 아바스칼이 강제 퇴거를 당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아바스칼이 내던 월세는 한때 500유로 수준이었지만 건물이 투자회사에 넘어간 뒤 1650유로까지 올랐다. 연금으로 급격하게 오른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워지면서 결국 지난 9월 23일 집을 떠나야 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주거비 상승에 불만을 품고 있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마드리드에서는 시위대가 퇴거 중단과 세입자 보호 강화를 요구하며 도심에서 농성을 이어갔고, 스페인 곳곳에서도 주거 문제를 둘러싼 집회가 이어졌다. 아바스칼의 사례가 장기간 이어진 임대료 상승과 부족한 공공임대주택 문제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스페인의 공공임대주택 비중은 2%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임대료까지 빠르게 오르면서 저소득층과 고령층을 중심으로 주거 불안이 커지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취약계층 세입자의 퇴거를 막고 임대차 계약을 연장하는 내용의 주택 대책을 내놓으며 대응에 나섰다. 단기 임대 규제를 강화하고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독일 베를린에서도 주택 문제가 심각하다. 베를린은 주민의 약 85%가 임차인인 도시로, 높은 월세와 주택 부족이 오랫동안 사회적 문제로 지적돼 왔다. 최근 선거에서도 주거비 부담이 주요 쟁점으로 부상했다. 좌파당은 대형 부동산 기업이 보유한 약 22만 채의 주택을 공공 소유로 전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지난 9월 20일 치러진 베를린 주 선거에서 25.3%를 얻어 제1당이 됐다.

 

다만 대규모 주택 수용이 실제 임대료와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를 두고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독일 킬 세계경제연구소는 20만 채가 넘는 주택을 기업으로부터 수용하더라도 주택 공급 부족 자체를 해소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유럽 전체에서도 주택 부담은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4년 사이 EU 주택 가격은 53%, 임대료는 25% 상승했다. 특히 관광 수요가 집중되는 대도시와 해안 지역에서는 단기 임대주택이 장기 거주용 주택 공급을 줄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지난 9월 주택의 가격과 공급을 안정시키기 위한 ‘적정주택법(Affordable Housing Act)’을 제안했다. 주거난이 심각한 지역에서는 단기 임대나 실거주 목적이 아닌 주택의 취득·사용을 제한할 수 있도록 법적 틀을 마련하는 내용이다. 다만 실제 규제 여부와 방식은 각 회원국과 지방정부가 지역 상황에 따라 결정하도록 했다.

 

유럽의 주택 위기는 단순히 집값 문제에 그치지 않고 정치와 사회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감당하기 어려운 월세와 부족한 공공주택이 세입자들의 생활을 압박하면서 각국 정부에 보다 강력한 주거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스페인의 고령 세입자 퇴거 사건과 베를린 선거 결과는 유럽에서 주거 문제가 얼마나 민감한 사회적 의제가 됐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