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검이 읽어주는 서도호, 22m 투명 집의 비밀

2026-08-26 18:43
 세계적인 설치 미술가 서도호가 서울과 뉴욕, 런던 등 자신이 머물렀던 도시의 기억을 하나로 엮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 상륙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30여 년간 탐구해온 '집'이라는 화두를 건축적 차원을 넘어 인간의 신체와 가족애라는 근원적인 영역으로 확장해 보여준다. 특히 5전시실에 설치된 2024년작 '완벽한 집'은 서로 다른 시공간의 문손잡이와 콘센트 같은 세밀한 요소들을 중첩해, 작가만의 독특한 '건축적 자서전'을 시각화하며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전시장 곳곳에는 개인과 집단의 관계를 성찰하게 만드는 기념비적 작품들이 배치되었다. 15m 높이의 벽면을 가득 채운 'Who Am We?'와 바닥에 설치된 수많은 인상군을 다룬 '바닥'은 작가의 초기 문제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또한 1999년부터 이어온 '다리 프로젝트'는 서울과 뉴욕을 잇는 상상의 통로를 통해 집에 대한 질문을 환경과 공존이라는 전 지구적 의제로 격상시켰다. 이는 건축가와 인류학자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로 평가받는다.

 


전시장 외부 복도를 가득 채운 22m 길이의 대형 설치물 '둥지/들'은 이번 전시의 백미 중 하나다. 작가가 거주했던 여러 도시의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제3의 장소를 창조해냈다. 관람객들은 투명한 천으로 구현된 작품 내부를 직접 걸으며 공간의 질감과 부피를 몸소 체험할 수 있다. 물리적 벽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작가의 기억과 관람객의 감각만이 교차하며, 집이 단순한 건물이 아닌 이동하는 기억의 저장소임을 증명한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할 변화는 MMCA스튜디오에서 공개되는 '부성애'에 대한 탐구다. 서도호는 거대한 건축적 구조물에서 벗어나 자신과 가장 밀접한 가족이라는 사적인 영역으로 시선을 돌렸다. 2026년 신작 '사랑의 기억'은 작가의 코트 안감에 가족의 옷에서 떼어낸 주머니들을 달고 그 속에 소중한 추억의 물건들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는 옷이 곧 가장 작은 단위의 집이 되고, 그 집이 다시 인간의 몸과 연결되는 순환 구조를 보여주며 작가의 예술 세계가 한층 깊어졌음을 시사한다.

 


오는 12월 18일부터는 서울박스 공간에서 뉴욕 아파트를 재현한 대작의 전체 유닛이 국내 최초로 통합 공개될 예정이다. 복도와 계단까지 포함된 거대한 유닛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번 기획은 서도호의 공간 실험이 도달한 정점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 전시는 서울 일정을 마친 뒤 일본 도쿄도현대미술관과 홍콩 M+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순회 전시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저력을 세계에 다시 한번 각인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전시의 몰입감을 높이기 위해 배우 박보검이 오디오 가이드 녹음에 참여해 관람객들에게 작가의 사유를 친절하게 전달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이번 전시가 서도호의 작업을 한국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재조명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에르메스와 제네시스 등 주요 기업들의 후원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는 관람료 8,000원에 운영되며, 관람객들은 30년에 걸친 거장의 예술적 궤적을 따라가며 자신만의 '집'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