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로화 팔아 엔화 방어... ECB '뒤통수'

2026-08-07 19:06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엔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유럽의 자국 통화인 유로화를 매도하는 이례적인 작전을 수행해 국제 금융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31일 미국은 일본과의 공조 하에 대규모 엔화 매수 개입을 단행했으나, 이 과정에서 유로화를 매물로 던진 사실을 유럽중앙은행(ECB)에 사전에 알리지 않았다. 거래가 모두 종료된 후에야 일방적인 통보를 받은 유럽 당국자들은 서방 경제권의 오랜 신뢰 관계를 저버린 행위라며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30년 만에 이뤄진 미·일 공동 개입이라는 역사적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유럽을 의도적으로 소외시켰다는 점에서 외교적 결례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개입 이튿날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와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이 긴급 통화를 가졌으나, 이미 냉각된 분위기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유럽 정책당국 관계자들은 전후 금융 안정을 지탱해 온 중앙은행 간 협력 전통이 미국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인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통상적으로 미국이 엔화 가치를 방어할 때는 달러를 팔아 엔화를 사는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이번에 미 재무부는 뉴욕 연방준비은행을 통해 유로화를 팔고 엔화를 사들이는 우회 전략을 선택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미국이 달러를 직접 매도할 경우 자국의 강달러 기조가 꺾였다는 잘못된 신호를 시장에 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상대적으로 영향이 적은 유로화를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분석하고 있다.

 

미 재무부는 이번 조치가 교환안정기금 내 자산의 효율적 재배분일 뿐이라며 외부 당국과 협의할 사안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보유 자산의 가치와 시장 유동성을 고려한 기술적 결정이라는 해명이다. 그러나 ECB 측은 자국 통화가 사전 동의 없이 타국의 환율 개입 수단으로 활용된 것에 대해 침묵을 지키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이번 사례가 나쁜 선례가 될 것을 우려하며 강력한 대응책을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개입의 결과로 엔화 가치는 달러당 164엔대에서 150엔대 후반까지 일시적으로 반등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일본 정부는 이틀간 약 13조 8,000억 엔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은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이 이번 개입에 적극 동참한 배경에는 일본이 엔화 방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유 중인 미 국채를 대량으로 매각해 미국 채권 시장을 흔드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으려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결국 미국의 이번 행동은 자국의 금융 시장 안정과 강달러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동맹국인 유럽의 뒤통수를 친 격이 되었다. 서방 통화 당국 간의 굳건했던 공조 체제에 금이 가면서 향후 국제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유로화가 미국의 전략적 도구로 전락했다는 비판 속에 유럽 금융당국이 향후 어떤 보복적 조치나 정책 변화를 꾀할지가 글로벌 외환 시장의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