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안 마셔도 지방간? "범인은 장내 미생물"

2026-06-16 19:19
 간 건강에 대한 현대인들의 우려가 깊어지는 가운데,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지방간의 원인과 해결책이 장내 미생물 생태계에서 발견되어 학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흔히 지방간은 과도한 음주로 인해 발생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간 무게의 5% 이상이 지방으로 채워지는 상태를 의미하며 술과 무관하게 비만이나 당뇨 등 대사증후군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를 대사이상 지방간질환(MASLD)이라 부르는데, 혈액 속 지방산이 간으로 과도하게 유입되거나 간 내 지방 합성이 촉진되면서 증상이 악화되는 특징을 보인다.

 

전통적인 지방간 치료법은 운동을 통한 체중 감량에 집중되어 왔으나, 환자들이 이를 장기간 유지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했다. 이에 핀란드 위배스퀼래대 연구팀은 장내 미생물과 간이 서로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에 착안하여 새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평균 나이 53.7세의 비만 및 지방간 환자 42명을 대상으로 4개월 동안 매일 2.8g의 자일로올리고당을 섭취하도록 했다. 자일로올리고당은 장내 유익균의 먹이가 되는 프리바이오틱스 식이섬유로, 국내에서도 이미 장 건강 기능성을 인정받은 성분이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4개월간의 복용 기간을 마친 후 간 지방량을 측정한 결과, 참가자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11명의 간 지방 수치가 평균 29%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히 간 지방만 줄어든 것이 아니라 총 체지방량과 내장지방, 복부지방은 물론 허리둘레와 콜레스테롤 수치까지 동반 하락하는 비만 개선 효과가 확인되었다. 이는 특정 식이섬유 섭취만으로도 간의 지방 대사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시사하는 유의미한 수치다.

 

연구팀은 간 기능 개선 효과가 뚜렷했던 참가자들의 장내 미생물 대사 과정을 정밀 분석하여 그 원리를 밝혀냈다. 효과를 본 이들은 평소 장 속 미생물이 탄수화물이 아닌 단백질을 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특성을 보였다. 미생물이 단백질을 분해할 때 발생하는 부산물인 '페닐아세테이트'는 간세포에 지방 축적을 유도하는 주범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자일로올리고당을 섭취함으로써 미생물이 탄수화물을 에너지로 쓰는 비중이 높아졌고, 결과적으로 페닐아세테이트 생성이 줄어들며 간의 지방 부담이 완화된 것이다.

 


다만 이번 연구는 몇 가지 보완해야 할 점을 남겼다. 실험 대상자가 42명으로 비교적 소규모였으며, 대조군이나 위약군 없이 진행된 단일군 연구라는 한계가 있다. 또한 자일로올리고당 섭취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 나머지 참가자들의 경우, 이미 지방간이 상당히 진행되어 식이섬유 섭취만으로는 손상된 간 기능을 되돌리기 어려운 상태였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연구팀 역시 이러한 한계를 인정하며, 이번 결과가 모든 환자에게 적용되는 만능 해결책은 아니라고 조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구는 장내 환경 조절을 통해 간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특정 대사 특성을 가진 지방간 환자들에게 맞춤형 식이 요법이 약물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음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이번 기초 데이터를 바탕으로 보다 정교한 맞춤형 간 질환 치료법을 설계하기 위해 대규모 임상 시험에 착수할 계획이며, 이는 향후 지방간 치료 패러다임을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