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심에 선수까지 입국 거부, 무너진 월드컵 정신
2026-06-11 21:04
세계인의 축제가 되어야 할 2026 북중미 월드컵이 개최국 미국의 서슬 퍼런 입국 규제에 가로막혀 파행 위기를 맞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 이후 지속해 온 반이민 정책과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감을 이유로 입국 심사 문턱을 대폭 높이면서, 선수와 심판은 물론 관중들까지 미국 땅을 밟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본선 진출국 중 4분의 1에 달하는 국가의 국민들이 비자 발급에 심각한 차질을 겪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스포츠의 순수성이 정치적 논리에 훼손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가장 충격적인 사례는 경기를 공정하게 운영해야 할 심판마저 입국을 거부당한 사건이다. 소말리아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심판으로 발탁된 오마르 아르탄 주심은 정식 비자와 외교관 여권을 모두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마이애미 공항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미국 당국은 테러 조직과의 연관성이라는 불투명한 근거를 내세웠으나, 일생의 꿈을 눈앞에서 놓친 아르탄 심판은 깊은 절망감을 표했다. 심판진의 입국 거부는 대회의 공정성 시비로 번질 수 있는 예민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세관국경보호국은 안보상의 이유를 들어 강경한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

정치적 대립 관계에 있는 국가의 대표팀에 대한 이른바 '문전박대'도 심각한 수준이다. 미국과 적대적 관계인 이란 대표팀의 경우, 선수들은 간신히 입국 허가를 받았으나 팀을 지원할 스태프 상당수가 비자를 받지 못해 정상적인 훈련이 불가능한 상태다. 더욱이 선수들은 경기 당일에만 미국 경기장에 출입할 수 있고 일정이 끝나면 즉시 인접국인 멕시코 등으로 이동해야 하는 가혹한 조건을 강요받고 있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할 선수들에게 가해지는 이러한 차별적 조치는 스포츠 정신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외교 결례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입국 심사장의 억류와 심문은 비단 특정 국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라크의 핵심 공격수 아이만 후사인은 공항에서 장시간 심문을 받은 뒤에야 입국할 수 있었고, 스위스의 브릴 엠볼로 역시 과거 이력을 문제 삼은 추가 심사 끝에 간신히 팀에 합류했다. 취재진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중동과 아프리카 출신 기자들은 취재 비자 승인이 거부되거나 공항에서 10시간 이상 억류된 끝에 추방당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응원단장 자격으로 출국하려던 연예인 이경규 씨가 비자 문제로 발이 묶이는 등 비자 장벽의 불똥은 국적과 직업을 가리지 않고 튀고 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미국 정부는 자국의 안보를 최우선으로 하는 기존의 입국 심사 기조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열린 취재진과의 대화에서 '올바른 사람들'만이 미국에 들어올 수 있도록 철저히 검증하고 있다며 현재의 규제 정책을 정당화했다. 이는 월드컵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입국 절차를 간소화해달라는 피파와 국제사회의 요청을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해석된다. 주최국으로서의 책임감보다는 자국의 정치적 이익과 안보 논리를 앞세운 미국의 태도에 참가국들의 불만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축구공 하나로 전 세계가 하나 된다는 월드컵의 슬로건은 거대한 비자 장벽 앞에서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에볼라 확산을 이유로 입국이 막힌 아프리카 관중들과 영사 서비스 중단으로 비자 신청조차 못 하는 이라크 팬들의 절규는 이번 대회가 누구를 위한 축제인지 묻게 한다. 개최 도시 간의 이동조차 정치적 성향에 따라 제약받는 현재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2026 북중미 월드컵은 스포츠 역사의 영광스러운 기록 대신 배타적 민족주의가 낳은 얼룩진 기록으로 남게 될 위험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