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죽음의 길, 내가 먼저 간다"…존엄사 대부, 스스로 생을 마감하다
2025-12-01 17:38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평생에 걸쳐 외쳐온 존엄사 운동의 세계적인 대부(代父)가 자신이 설립한 단체를 통해 스스로 생의 마지막을 선택했다. 스위스의 대표적인 조력자살 단체 '디그니타스(Dignitas)'는 30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단체의 창립자인 루트비히 미넬리가 93세 생일을 불과 며칠 앞둔 지난 29일 조력자살로 영면에 들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한 개인의 종말을 넘어, 그가 평생을 바쳐 옹호해 온 '삶과 죽음의 자기 결정권'이라는 철학을 자신의 삶으로 온전히 증명해 보인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법조인 출신인 미넬리는 1998년 디그니타스를 설립한 이후, 단순한 활동가를 넘어 법정에서 '죽을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싸운 투사였다. 그는 스위스 연방대법원은 물론 유럽인권재판소(ECHR)의 문을 수차례 두드렸고, 끈질긴 소송 끝에 여러 차례 의미 있는 승소를 이끌어냈다. 디그니타스 측은 그의 법적 투쟁이 스위스 관련 법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했다. 특히 2011년, 유럽인권재판소가 개인이 자신의 삶이 끝나는 시기와 방식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한 판결은 그의 활동이 낳은 가장 기념비적인 성과로 꼽힌다. 이는 조력자살에 대한 논의를 윤리의 영역에서 인권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미넬리의 활동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스위스의 독특한 법률 체계가 있다. 스위스 법은 의사가 환자에게 직접 치명적인 약물을 주사하는 '적극적 안락사'는 살인으로 간주해 엄격히 금지한다. 그러나 죽음을 원하는 환자 본인이 명확한 의사를 밝히고,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약물을 투입해 삶을 마감하는 '의사 조력자살'은 수십 년 전부터 합법으로 인정해왔다. 미넬리와 디그니타스는 바로 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고통받는 이들이 존엄하게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절차와 환경을 제공하는 데 집중해왔다.
미넬리가 남긴 유산은 스위스를 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현재 디그니타스의 회원 수는 1만 명을 훌쩍 넘었으며, 스위스 내 다른 유사 단체들과는 달리 국적을 가리지 않고 해외 거주자에게도 서비스를 제공하며 국제적인 조직으로 성장했다. 그의 죽음 이후에도 디그니타스는 "창립자의 정신을 이어받아 삶과 죽음의 자기 결정권과 선택의 자유를 지향하는 국제적 전문조직으로 계속 운영·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그의 마지막 선택은 자신이 만든 길의 종착점이 아니라, 그 길을 더욱 넓고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마지막 증거가 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