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역사가 담긴 벽에 그린 게 하필... '남성 생식기' 낙서 테러
2025-05-14 10:18
13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 등 주요 외신 보도에 따르면, 페루 수도 리마에서 북쪽으로 약 500km, 트루히요에서 서쪽으로 약 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찬찬 고고 유적지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한 남성 관광객이 유적지의 성벽에 래커 스프레이로 추정되는 검은색 페인트를 이용해 최소 4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남성 생식기 그림을 휘갈기고 유유히 도주한 것이다. 이로 인해 최소 3곳의 벽체가 심각하게 훼손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찬찬 유적지는 서기 13세기 초부터 15세기 말까지 남아메리카 페루 북부 태평양 연안을 지배했던 고대 치무 문명의 수도였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이전에 건설된 최대 규모의 계획도시로서, 당시 치무 왕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다. 궁전, 신전, 광장, 통로, 정원 등이 체계적으로 배치되어 있었으며, 산업 및 농업용수 관리 시설까지 갖춘 '도시계획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찬찬은 흙을 햇볕에 말린 벽돌인 '어도비'와 흙담인 '어도본'만으로 건설된 세계 최대의 어도비 도시라는 점에서 독보적인 가치를 지닌다. 비가 거의 오지 않던 당시 기후 덕분에 수백 년간 치무족의 숨결을 간직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건축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찬찬은 198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도굴꾼들의 약탈과 엘니뇨 등 이상기후로 인한 폭우로 인해 이미 심각한 훼손이 진행되고 있어 유네스코 위기유산 목록에도 올라 있는 상태였다. 페루 정부는 그동안 찬찬 유적지의 보존과 복구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이처럼 어렵게 보존되어 온 인류의 귀중한 문화유산이 한 개인의 무분별하고 저속한 행위로 훼손되자 페루 사회는 큰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페루 문화부는 13일 공식 성명을 발표하고 이번 사건을 강력히 규탄했다. 문화부는 "라리베르타드 지역 찬찬 유적지 벽체에 누군가 검은색 에어로졸 스프레이로 남성 성기 그림을 그려놨다"며 피해 사실을 확인하고, 이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심각한 무시이자 고고학 유적지를 보호하는 규정을 명백히 위반한 행위"라고 강조했다.
페루 문화부는 현재 경찰과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용의자 신원 파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훼손된 유적을 최대한 원상 복구하기 위해 전문가들로 구성된 복구팀을 즉시 투입하여 작업에 착수했다고 덧붙였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번 테러 순간이 담긴 영상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범인이 검거될 경우 최대 6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전해졌다.
그러나 페루 시민들 사이에서는 문제의 관광객이 아무런 제지 없이 유적지 성벽에 낙서를 할 수 있었던 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유적지 관리 당국의 소홀함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소중한 문화유산에 대한 관리 및 경비 시스템이 미흡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페루 정부는 찬찬 유적지 인근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고속도로 건설 작업 등을 고려하여, 유적지 일대에 대규모 경계 울타리를 설치하는 등 보호 장치를 더욱 강화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이번 찬찬 유적지 낙서 테러 사건은 전 세계의 역사 유적지들이 직면하고 있는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단순히 물리적인 훼손을 넘어, 수백 년, 수천 년의 역사가 담긴 인류의 자산에 대한 모독 행위라는 점에서 더욱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해당 유적지가 하루빨리 복구되고, 이러한 불행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 및 경각심 고취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